전략 이해찬·경륜 박지원·노련미 한명숙

2선 후퇴론 논란 불구 지금의 文 있게 했다
이해찬 “내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일요서울 | 조기성 기자]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가 짜놓은 시나리오대로 대선 정국이 흐르는 것 같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선대위 한 관계자의 푸념 섞인 말이다. 실제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가 이렇게까지 선전(?)할 것으로 예상한 이들은 극히 드물다. 최근의 여론조사를 들여다보면 문 후보는 박 후보와 양자대결에서도 엎치락뒤치락 혼전 양상을 보이고 있고, 야권단일후보 선호도에서도 안철수 무소속 후보와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이렇듯 문 후보가 제1야당 대선 후보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 데는 이 대표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다는 게 정가의 대체적 시각이다. 여기에 힘을 보탠 이가 박지원 원내대표와 한명숙 전 대표라는 데에도 이견을 제기할 이들이 별로 없을 것이다. 이를 입증하듯 ‘이해찬-박지원 2선 퇴진론’이 또다시 민주당 내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 한 전 대표의 막후 정치 내막을 파헤쳐봤다.

이해찬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한명숙 전 대표는 문재인 후보의 직속 자문기구인 고위전략회의에 참여하고 있다. 이외에 김한길 최고위원을 비롯해 당내 경선에 함께했던 손학규·김두관·정세균 후보가 함께하고 있다. ‘이해찬-박지원-한명숙’, 이 세 사람이 문 후보의 든든한 우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한길 최고위원은 이해찬 대표와 지난 전당대회에서의 감정의 골이 깊고, 손학규-김두관-정세균 전 대표는 대선 후보 경선에서의 앙금이 남아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우상호 캠프 공보단장이 “고위전략회의의 의견이 자문식으로 후보에게 반영될 수 있겠지만 선대위 결정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구조”라고 밝히고 있지만 고위전략회의가 ‘선대위 위의 선대위’로서 옥상옥 구조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이해찬-박지원-한명숙 세 사람의 입김이 문 후보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해찬 전략이 통하고 있다

‘선(先) 당 대선후보 선출, 후(後) 안철수와의 단일화’.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지난 6월 상임고문단과 오찬 자리에서 이야기한 내용이다. 9월 중순 당 후보 선출, 11월 초순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등 당 외 후보와의 단일화를 거쳐 야권 단일 후보를 만드는 2단계 대선 후보 경선 계획안을 말한 것이다.
또한, 이해찬 대표는 지난 9월에는 “당당히 문재인 후보를 (당 대선 후보로) 선출해내니 지지율이 결집돼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안철수 후보가 어제 대선출마를 선언했지만 문 후보와 거의 동일한 지지율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제부터 시작해 추석연휴까지 한 국면, 추석연휴를 지나 안 후보와 단일화를 하는 11월 초까지가 또 한 국면이 될 것이고, 그 이후 후보등록일로부터 12월 19일까지 마지막 50일의 국면이 이어질 것”이라며 “세 국면 하나하나를 다 이겨야 마지막에 승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문 후보는 당 대선 경선에서 단 한 차례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은 채 결선투표 없이 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또한, 희망 2013 승리 2012 원탁회의 등 야권 인사들이 연속적으로 야권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면서 안철수 후보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안철수 캠프 한 관계자는 [일요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조국 서울대 교수도 그렇고, 원탁회의 원로분들도 그렇고 사실상 안 후보에게 단일화 협상에 나서라고 압박하고 있는 것”이라며 “원탁회의는 이미 지난해 ‘혁신과 통합’을 거치면서 이해찬 대표와 한명숙 전 대표 등과 깊은 교감이 있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한명숙 전 대표는 민주화운동의 상징성과 김대중 정부에서 여성부 장관·노무현 정부에서 환경부 장관과 여성 최초 총리로 풍부한 행정 경험을 갖춘 노련미를, 이명박 정부에서 강한 투쟁력을 보여줬던 박지원 원내대표는 풍부한 경험과 경륜을 통해 문 후보에게 조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개 드는 ‘2선 퇴진론’

이에 이해찬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의 2선 퇴진을 위한 물밑 움직임이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표면적으로는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간 단일화 조건 중 하나인 ‘정치쇄신’의 명분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이지만 속내는 막후 정치 연결 고리를 끊어내겠다는 것이다.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비노 진영에서는 11월 초까지는 가부간 결정을 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 후보 역시 당 지도부의 2선 후퇴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의 2선 후퇴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없지 않은 상황이다. 당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의 2선 후퇴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후보가 직접 나서서 성사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의 2선 후퇴는 인적쇄신에 대한 당 안팎의 압박을 벗어남과 동시에, 무소속 안 후보가 요구한 정치쇄신의 요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는 것이 정치권의 공통된 시각이다.
비노 진영의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에 대한 2선 후퇴 주장이 수용될 경우, 민주당과 문 후보의 입장에서는 정치쇄신을 이뤘다는 명분을 얻게 돼 범야권 대선 후보 단일화가 급물살을 타게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양정철 메시지 팀장 등 친노그룹 9명이 백의종군을 했지만, 이것만 같고 안 후보를 단일화 테이블에 끌어내기에는 부족함이 있다는 것이 당내 일반적 인식”이라며 “이 때문에 비노 인사들을 중심으로 한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 퇴진 움직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도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단일화가 필수라는 점에서 수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문 후보는 지난 24일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 퇴진을 사실상 거부했다. 문 후보는 이날 영등포 당사에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하면서 “지도부 개편은 인적 쇄신의 본질이 아니다”며 “국민의 눈높이에서 정치와 정당을 혁신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먼저고 지도부 개편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당내에서는 문 후보가 지도부 쇄신을 통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는 설명이 나오고 있다. 지난 22일 캠프 내 친노 핵심 인사 9명이 물러난 상황에서 다시 캠프와 당이 특정인사 퇴진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면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추진이나 박근혜 후보와의 대선 경쟁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했다는 얘기다.

퇴진론의 첫 시험대는 문 후보 지지율 추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선후보 3자 간 지지율 가상 대결에서 문 후보의 3위가 굳어지는 상황인데 향후 문재인ㆍ안철수 간 단일화 지지율에서 문 후보가 뒤처지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를 돌파하기 위한 카드로 두 사람에 대한 당내외 퇴진 요구가 당장 거세질 수 있다.
이해찬 대표도 지난 24일 라디오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민주당은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민주진보 진영의 더 큰 단결과 단일후보 선출, 정권교체를 위해 헌신하겠다”며 “스스로를 비워 새 시대 문을 열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측근들에게 “내 역할은 여기까지였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권 교체’를 위한 이 대표의 시나리오가 12월 19일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ksch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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