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순실 사장은 이날 밤 9시 30분께 외출하고 돌아와 308호실 전용 주차장인 그곳에 차를 세우고 차에서 막 내리는 순간, 위에서 조그만 고무나무 화분이 떨어져 정확하게 정수리를 때리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는 것이다. 화분이 하늘에서 떨어질 리는 없고 분명히 그 주차장 위쪽 어느 층에선가 떨어진 것이었다. 그것도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위치로 떨어졌기 때문에 인위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거기에 화분을 떨어뜨릴 수 있는 아파트 호수는 여섯 가구라고 했다. 그 주차장이 있지만 맨 밑에 층인 1층을 제외하고 2층인 208호, 3층인 308호, 그리고 4층이란 호수는 안 쓰니까 508호, 608호, 708호, 808호 등이다. 1층에선 화분을 떨어뜨릴 수가 없으니까 우선 용의 호수에서 제외돼야 한다.

“그 여자는 3층에 산다고 했죠?”
내가 질문하자 추 경감은 빙긋이 웃었다.
“남편이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군요. 하지만 남편인 허벽 씨는 현장에 있었다는데요."

추 경감이 헛 짚었다는 투였다.
“아니? 죽는 현장에 같이 있었단 말입니까?”
“그런 것도 아니고, 사고가 나자 채 15분도 안 되어서 뛰어왔는데.......”
“그게 아니고 옆 건물에 있는 헬스센터에서 왔다는군요.”

나는 그 말이 퍽 석연치는 않았으나 덮어두고 추 경감의 설명을 계속 들었다.
“그런데, 그 흉기인 화분이란 것이 누구 집 건지 알 수가 없어요. 하기야 조그만 화분이야 아파트 사는 사람치고 한두 개 안 가진 집이 어디 있습니까? 더구나 이 아파트는 베란다 난간 끝에 화분을 내다 얹어 놓을 수 없는 구조로 돼 있지요. 임 기자가 이 아파트에 사니까 잘 알 것 아닙니까?”

그건 그랬다. 원래 아파트를 지을 땐 베란다라는 것을 만들었지만 평수를 좀 넓게 쓰기 위해 그 베란다에 모두 알루미늄 샷시를 대고 유리를 끼워서 실내로 만들어 베란다라곤 없었다.

“그렇다면 그 아파트 6가구 중 어느 층에선가 화분을 들고 배순실 사장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차에서 내리는 순간 머리 위로 떨어뜨려 살해했다는 것이 확실한 것 아닙니까? 다른 신문사 기자는 아직 모르죠?”
나는 눈에 생기가 바짝 돌았다.
특종기사의 꿈에 사로잡혔다.
“배순실의 나이는 몇 살입니까? 본적은? 가족 상황은?”

나는 수첩을 꺼내 들고 다시 한꺼번에 여러 가지 질문을 퍼부었다.
추 경감은 풋나기 기자처럼 흥분해서 설치는 내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어쨌든 나는 그날 밤 우연히 주운 기사로 특종을 하게 되었다. 특종을 하게 되자 나는 더욱 욕심이 났다. 범인을 캐내고 싶어졌다. 만약 내가 직접 범인을 캐내지 못한다면 추 경감한테 들러붙어서라도 범인 체포의 특종을 또 한 번 써보고 싶었다.
나는 내가 임시로 맡고 있던 이산가족찾기 취재를 잠시 덮어 놓고 이 사건에 몰두하게 되었다.

아파트 화분 날벼락 사건의 임시 수사본부가 사건 현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반포파출소에 설치되었다.
나는 거기서 여러 가지 정보를 얻어 내고 수첩을 정리해 두었다.
배순실과 허벽 부부에 관한 것부터 정리해 나갔다.

부인으로 갱년기에 접어든 나이였다. 그러나 마흔이 넘은 여자같지 않게 얼굴이 빼어난 미모였으며 중년 부인, 특히 부유층 여성이라면 허리통과 목이 굵고, 두 볼이 심술이 가득 든 듯 불룩한 것을 연상하지만 배순실은 그와는 딴판이었다. 체중이 46킬로에 가는 허리, 긴 목, 그리고 오똑한 코며 맑은 피부가 로코코시대의 프랑스 귀부인 같았다고 이웃 사람들은 말했다.
그녀는 남편이 경영하는 농수산물 수출회사의 이사로 되어 있었지만 놀기가 심심하다고 신길동에 조그만 봉제공장, 즉 인형공장을 차려놓고 사장직을 맡아 소일삼아 나가고 있었다.

남편인 허벽 사장과는 19년 전에 연애결혼 했다고 한다. 
봉제공장을 찾아갔다.
그곳의 공장장인 김형자라는 여인이 배순실과 고등학교 동창생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디룩디룩 살이 찌고 볼품 없이 생긴 여자였다.
“배 사장과 허 사장이 어떻게 연애를 하게 됐냐구요? 아니 장본인이 죽고 없는데 그런 것은 알아서 뭘 하디요?"

공장장의 말투에는 이북 지방 사투리가 가끔 섞여 나왔다.
“글쎄요. 뭐 별다른 의미는 없습니다만 혹시 범인을 찾는 데 도움이 될까 하고.......”
내가 말을 얼버무리자, 공장장은 입맛을 쭉 다시며 의자를 가리켰다. 나는 수첩을 꺼내 들며 앉았다. 공장장도 다른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걘 나와 같이 니북에서 피난 나왔댔어요.”
공장장은 사장 칭호를 싹 빼고 ‘걔’로 얘기를 시작했다.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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