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28분에 아파트에 도착, 피살이라....... 당시 목격자는 누구였나요?”
“목격자요? 아니, 그 시간에 텔레비전 안 보고 누가 아파트 밖에 나가 별이나 쳐다본답니까? 수위도 텔레비전 보느라 배순실이 차 타고 오는 것도 못 보고 있다가 비명소리를 듣고 뛰어 나갔다니깐요.”

“경감닌. 그럼 누가 이렇게 정확하게 시간을 수록해 놓았습니까? 20분께, 30분께도 아니고 45분, 28분,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나는 타임 테이블의 도표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게 다 이산가족찾기 생방송 덕분이지요. 모두가 그 생방송을 보고 있었으니까 시계는 안 봤지만 그때 텔레비전은 무슨 장면을 했느냐고 물어서 가령 수위가 비명소리를 듣고 뛰어나갔다면, 그때 당신은 무슨 장면을 보다가 나갔느냐고 물어서 그 장면을 방영한 시간이 몇 시 몇 분이냐고 방송국에 물으면 틀림없는 시간이 나오지 않습니까?"
이 대목에서 추 경감은 아주 신이 나서 크게 제스처를 써 가며 설명했다.
수사의 초점은 허벽, 박윤준, 김형자로 일단 좁혀졌지만 모두가 확실한 동기나 증거를 찾아낼 수가 없었다.

수사반은 다른 방향으로 수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피살자의 남자관계 등을 캐고 있는 것 같았다. 피살자가 워낙 뛰어난 미인이었기 때문에 살펴볼 만한 방향이었다.
사람, 즉 남편 허벽, 거래관계자 박윤준, 공장장 김형자 중의 한 사람이 범인일 것 같았다. 이것은 수사관의 육감이 아니라 신문기자의 육감이기도 하다.

남편 허벽은 집념이 대단하고, 계산이 치밀한 ㅁ재산 위에 얹혀서 사장이 되었으니 마누라가 항상 거북한 존재였다고 가정할 수가 있다. 자기도 이 나라의 엘리트인 행정고시 출신의 나무랄 데 없는 인물인데, 한 여자한테 눌리다시피 해서 일생을 보낸다는 것이 답답한 노릇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마누라로부터 해방되고 싶었을지 모른다.

다음 박윤준, 그는 요즘 사업이 잘 안 돼 그날 그날 부도를 막느라고 정신이 6백만 원짜리 빚, 배순실만 없어지면 어떻게 방법이 나올지 모른다. 자기 운전수와 짜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화장실 갔다 오는 척하고 범행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배순실이 그 시간에 돌아온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 다음 김형자. 그녀도 범행을 할려면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녀는 이혼하고 혼자 살면서 늘 동창생인 배순실에게 질투를 느끼고 있었다.

같은 학교 출신이지만 우선 외모가 자기보다 뛰어나게 아름답고, 자기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고, 더구나 자신이 말했듯이 자기는 못 가진 남편을 가진 배순실에 대해 극도의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용모, 지위, 비교도 안 되는 배순실에 대해 느낀 열등감은 마침내 질투로 변하고, 그 질투는 이글거리는 불덩이로 변해 살인으로 연결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세 사람 중에서도 가장 용의점이 많은 사람은 남편 허벽일 것이란 막연한 생각이 자꾸 뒷꼭지를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나는 허벽 사장을 만나러 강남병원 영안실로 갔다.
영안실 빈소를 찾아 들어서자, 맞은편 단 위의 검은 리본을 늘어뜨린 배순실 사장의 사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참으로 빼어난 미모였다. 미인은 단명 한다고 누군가가 말했던가?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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