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소 안의 의자에는 여기저기 몇 사람이 “허 사장은 어떻게 보면 참으로 여복도 많은 사람이야. 또 장가를 들어야 할 것아닌가?” 라고 할 것 아닌가.
“남자는 상처를 하고 나면 화장실에 가서 씩 웃는다면서?”
“예끼 이 사람. 저기 망인이 듣겠네.”

“들으면 들었지. 허 사장이 이번에 새 장가를 들면 또 배 사장만한 미인을 얻게 될까?”
“그렇다면 미인 아내가 몇 번짼가?”
“따지고 보면 세 번째가 되지 않나? 제기럴, 누군 쭈구렁 바가지 같은 여편네 하나만 데리고 일생을 사는 불운도 있는데.......”

이야기를 주고받던 남자들은 나이로 보아 허 사장의 친구들인 것 같았다.
아내란 말에 귀가 번쩍했다. 배순실과 재혼했다는 말은 새로운 정보였다. 나는 그 중의 한 사람이 화장실에 가는 틈을 타서 그를 뒤따라가 말을 붙이는 데 성공했다.
“저어 좀 참고할 일이 있어선데요. 허 사장의 죽마고우지요?”
그는 나를 아래 위로 훑어보다가 알았다는 듯이 순순히 얘기를 했다.
“아, 경찰서서 오셨군요. 뭐 이제야비밀도 아니니 다 말씀드릴 테니 뭐든지 물어 보십쇼."

“저 배순실 사장이 허 사장의 두 번째 아내라고 얘기들을 하는 것 같던데.......”
“예, 그것 말입니까? 허허허. 그 첫 번째 여자도 굉장한 미인이었죠. 뭐 정식 결혼한 것은 아니니까 마누라라고 할 것은 그의 얘기는 허 사장이 공무원 생활을 하던 총각시절 자주 다니는 직장 옆의 다방 아가씨를 가까이 해서 따라다녔다고 한다.

그 레지 아가씨도 드물게 보는 미인이었는데, 허 사장의 프로포즈에 넘어가 결혼도 하지 않고 몇 달 동안 동거 생활을 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허 사장은 배순실을 알게 되자 그 다방 아가씨를 헌신짝처럼 버렸다고 한다.
“그럼 그 아가씨는 어떻게 됐습니까?”

“글쎄요. 벌써 이십 년 가까이 된 일이니까. 그땐 그 아가씨가 자살하겠다고 약을 먹는 바람에 나까지 뒷수습하느라 혼이 났었지요. 허지만 지금은 어느 착한 남자의 아내가 돼 있겠지요.”
“그 아가씨는 가족도 없었나요?”
불쌍한 애라고들 했습니다만.......”

그때였다. 누군가가 우리 사이에 쑥 들어섰다.
“자넨 무슨 쓸데없는 소릴 자꾸 하고 있는 거야?”
그것은 허 사장이었다. 허 사장은 못마땅한 듯이 친구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안녕하십니까? 잠깐 문상을 왔다가.......”
내가 허 사장을 알아보고 먼저 얼버무렸다. 무언가 석연찮은 짓을 하다가 들킨 어린이 같다고 내 스스로 생각했다.

“아, 기자님이시군요. 또 무슨 특종을 하실려고.......”
허 사장은 심히 못마땅한 표정이다. 
“이번엔 나를 범인으로 생각하시나요? 왜 뒷조사는 하러 다닙니까? 그래 뭣 좀 캐냈습니까?”

허 사장은 여전히 비꼬는 말투였다.
“그럴 리야 있습니까. 다만.......”
“다만 뭡니까?”
허 사장은 더욱 퉁명해졌다.

“이 더운 여름밤에 갑자기 사우나탕엔 왜 들어갔습니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꺼림칙하게 생각했던 질문을 내뱉고 말았다.
“왜요? 여름엔 헬스 센터도 못 가고 사우나도 하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나요? 기자양반은 이열치열이란 것을 아시오?”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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